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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호/칼럼]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것

기사승인 201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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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 대부분은 매일 고기와 그 부산물을 먹으며 살아간다. 제육볶음 반찬의 학교 식당 밥을 먹고, 후식으로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마시고, 야식으로 치킨을 주문해 먹는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의 1인당 육류소비량은 돼지고기 24.4kg, 닭고기 15.4kg, 쇠고기 11.6kg이다. 이 돼지, 닭, 소는 어떻게 우리의 식탁까지 도착하는 걸까?
암퇘지들은 평생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철제 감금틀에 갇힌 채 인공수정과 출산을 반복한다. 출산 후 바로 감금틀에 갇히고, 한 달 뒤 새끼를 빼앗긴 뒤 다시 인위적으로 임신하는 삶을 3~4년 동안 살다가 번식력이 떨어지면 도축당한다. 엄마와 떨어진 아기돼지 역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다가 6개월 만에 도축당한다. 암탉 역시 A4용지보다 작은 케이지 안에서 평생을 보낸다. 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를 쪼아 자해하기 때문에 부리가 잘린 채, 공간 부족 때문에 다른 닭의 사체 위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는 태어나자마자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분쇄기로 향한다. 젖소들은 꼬리가 잘린 채 우유를 위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원래 수명의 4분의 1에 불과한 5살이 되기 전에 도축되고, 송아지들은 창백한 살색을 만들기 위한 어두운 사육장에서 쇠사슬에 묶여 사육된다. 이것이 전국의 소 304만 마리, 돼지 1,032만 마리, 닭 1억 4,138만 마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육 방식을 ‘공장식 축산’이라고 부른다. 공장은 고객에게 판매할 ‘상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자본주의 안에서 동물은 더 이상 생명이 아니라 상품으로서의 고기를 만드는 재료다. 재료에게는 존엄성도 고통을 느끼는 능력도 없으므로 모든 과정이 이윤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처리되며, 소비자들은 그 과정을 모르거나 일부러 모른척한다. 깔끔하게 포장되어 바코드가 붙어서 나오는 고기에서 살아있는 소나 돼지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으므로, 우리는 마트에서 파는 고기가 상품이 아닌 생명임을 망각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다. 슈퍼돼지 옥자는 산골 소녀 미자의 단짝 친구로, 몸을 던져 미자를 구할 만큼 용감하고 지레의 원리를 이해할 만큼 영리하다. 영화를 보면서 옥자를 음식으로 생각하는 관객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들이 생각과 감정이 있고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존재임을 알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매일 먹는 고기. 동네 슈퍼나 음식점에서 쉽게 사먹을 수 있는 고기가, 한때는 살아있는 생명이었다는 것. 옥자처럼 가족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상품이 아닌 동물이었다는 것. 이들에게도 고통받지 않고 최소한의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 이것을 기억한다면, 더 이상 고기를 먹을 때 마음이 편치 않을 수도 있다. 왜 고기 한 번을 편하게 못 먹고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지 짜증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시작이다. 모두가 당장 육식을 그만두고 동물 해방 운동을 벌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은 가능하다. 동물 관련 이슈를 피하지 않고 귀 기울이는 것, 가끔은 조금 비싸더라도 동물복지농장의 고기와 달걀을 선택하는 것, 나아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상품이 아닌 생명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천천히 바꿔나가는 것까지. 이 모든 것이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한다. 모두가 조금 더 불편해질 때 현실은 조금 더 나아진다.

김지연 기자 r1301@naver.com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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